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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보경을 맞이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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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ky_bok 2022. 5. 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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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쓴다.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었던지 꽤 되었고, 그래서 나는 점점 목적없고 명료하지 못한 삶은 지속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하는게 너무 많다. 그런데 그 행위에 대한 목적이 없다. 목적없이 하는 것도 좋지만 목적이 있어야 그제서야 행위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냥 관성의 법칙에 의해서 하는 것들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습관을 들여 놨을 뿐. 

 

이제는 목적과 우선순위를 재 정의하고 다시 관성에서 벗어나 움직여야 한다. 

나의 목적과 목표는 저 멀리 나아가 있는데 나의 행동이 아직 뒤쳐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해야한다는 압박감, 강박감이 있었을수도 있다. 

 

나는 마이솔 새벽 수련이 가기 싫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진도를 받고 싶어서 가지만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되는바가 없다. 

새벽수련의 열기는 대단하지만 뒤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내가 원하는 몸들의 모습이 아닌 것도 맞다 .

나는 마른 근육을 원하는게 아니다. 

 

나는 조금 더 외적으로 채워진 근육 볼륨있고 탄탄한 몸매를 원한다. 

어쩌면 나의 목적과 나의 행위가 불일치한것은 아닐까? 

내가 원하는 방향성은 따로 있는데

내가 하고있는 일은 정작 다른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사이의 간극을 매꾸려고 또 일을 저지르고 계획을 짜고, 무리를 하고있는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나는 왜 요가에서 못 벗어 나는가? 

요가를 하며 얻게 된 요가철학이 좋은거지 내가 의미 없이 하게 되는 행위가 좋은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나는 그 잠깐의 명상이 좋아서 요가가 좋아졌고 더 깊이 공부했다. 

그런데 지금은 철학이나 생각, 명상은 빠져있고 가야한다는 압박감만 남아있다. 

이게 진정한 내가 원하는 요가일까? 아니다. 

 

실행력은 없다라는 전자책을 봤다. 

게으른 나도 인정해 줘야 부지런한 내가 있다는데.. 맞는말이다. 

요가하지 않는 나를 인정해줘야하는걸까 

한번도 생각해 본적없다. 내가 요가라는 틀에 갇혀버린 것만 같다.

 

정작 요가를 하고 있지 않는 나를 그러나 다른사람에게는 요가인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스스로 혐오하는게 아닐까? 

정말 전문가가 아닌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냥 부유하고 나를 알아주는 게 좋은데 어느새 그 모습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지 ... 

 

인스타그램도 하기 싫어졌다. 틀이 생겨서 그런가보다 

오히려 개발 인스타그램이 아무생각없이 맘 편히 하고 있는 느낌이다. 

 

주짓수가 끝나고 집에오면서 든 생각은 그것이다. 

나는 놓아줘야한다. 

옛날의 보경이를 

그리고 새로운 보경이를 맞이해야한다 .

우선순위와 가치도 변했을 것이고 목적이나 목표 상황도 변했다. 

새로운 보경을 맞아 들이고 그에 맞는 행위와 행동에 부합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는 더 멀어지지 않을까? 

 

 

추가 )

수트라 제 1장 32절

정신적인 혼란은 하나의 진리에 대한 집중을 함으로써 극복 된다.

정신적인 혼란은 무집착의 수행으로 초월적인 상태에 이르는 것을 방해한다. 그것은 '하나의 진리'를 습관적으로 훈련하고 실천함으로써 제거될 수 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마음은 대상을 인식하는 데 분리가 되지 않고 하나로 집중된 에카그라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마음의 혼란이 없다. 그러나 만약 마음이 대상과 연결된다면 마음의 인식은 대상과 분리되지 않고 대상에 빠져든다. 하나로 집중된 마음은 마음의 흐름이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마음이 대상과 분리되어 모든 것을 인식한다면 '나'라는 에고는 소멸된 것이다. '내가 본 것을 접촉하였다.', '내가 과거에 접촉한 것을 보았다.'라는 것으로 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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